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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산 군립공원 [防禦山郡立公園 진주] : 지도,정상석 사진,산행코스

疾 風 勁 草 2014. 8. 27. 12:13

 

방어산 군립공원 [防禦山郡立公園 진주] : 지도,정상석 사진,산행코스

 

방어산(530m)은1993년 12월 16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다.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난(兵亂)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이다. 해발 530m의 방어산은 함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산의 형태는 기암괴석으로 병풍처럼 둘러 쌓여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철쭉 ,진달래,자생란,참나무,단풍나무 등의 식물군과 노루, 멧돼지 ,다람쥐, 산토끼 등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1993년 12월 16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남동쪽에는 여항산(770m)이, 정상에는 옛성의 자취가 있으며 서쪽에는 장군당, 그 아래는 마제현(馬蹄峴 말발굽 고개),북쪽에는 장군철상, 동쪽에는 옛절터가 있었으며, 멀리 지리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절의 이름은 망일암(望日庵)이라고 했으며 ,장군의 이름은 묵신우(默神佑)로서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깍아지른 듯한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백근짜리 활을 잡아 벌리는 힘을 지녔었다고 한다. 때마침 변성(邊成)에 큰 병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3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중 혜성의 도움을 얻어 산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을 방어했다. 적은 방어산 맞은 봉우리에 진을 치고 도전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달을 버티다가 비로서 영을 내려 화전을 빗발처럼 퍼부으니 화전에 꿰인 채 타죽은 적은 부지지기 수 였다. 적은 장군의 지략을 보고 이것을 필경 신병의 병술이라 하여 버터보다가 도주했다 . 사람들은 그러한 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장군과 중 혜성의 철상과 철마를 세웠다고 전하며 장군의 군마가 전쟁때 흘린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고 한다. 
산 이름을 방어,봉우리를 산성,마을 이름을 승어(昇禦 지금의 승산)라 일컬음은 방어산의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지금의 승산리는 일제가 방어산의 지기(地氣)를 차단하기 위하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승어산리를 병합하여 승내리라 하였지만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고유 지명을 찾고 지기를 되찾는다는 뜻에서 1995년 11월 1일 시조례 제 149호에 의하여 승내리는 승산리로 개칭되었다. 실제 방어산의 기록은 고려 우왕5년 (1379) 5월에 왜구가 반성을 거쳐 이 산에 올라 목책을 세우고 진을 쳤다. 이때 상원수 우인열 (禹仁烈)은 박경수,오언과 더불어 왜구를 포위, 공격하여 산을 탈환, 왜구를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방어산 정상은 장군대라 불리는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 아래로 흔들바위와 상여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아래 200m쯤 위치한 흔들바위는 바위가 기우러진 쪽에 부자가 난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어 서쪽 진양마을 사람들과 동쪽 함안마을 사람들이 서로 자기 쪽으로 바위를 기울게 한다고 한다. 방어산에 대표적 등산코스는 하림마을을 출발해 마당바위, 방어산 고개, 방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소요시간은 약 5시간.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능선의 굴곡이 심하고 암반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감나무, 밤나무를 비롯해 울창한 송림도 만날 수 있고, 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도 어느 명산 부럽지 않은 곳이다. 이 산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아득히 멀리 보이고 합천의 가야산, 고성의 적산, 창녕의 함백산도 부르면 대답할 것 같다. 가까이로는 동남에 여항산과 백이산의 동북에는 삼봉산이 우뚝 솟아 함안의 초병처럼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방어산(530m) 정상. 이 곳에는 300평이나 되는 넓은 바위가 있다. 옆에 있는 바위까지 합치면 넓이는 더하다. 산 정상에 그것도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깎아놓은 바위가 있다. 일명 너럭바위 내지 마당바위라 부른다. 마당바위 맞은 편에는 방어산마애불(防禦山磨崖佛. 보물 159호)이 보이고, 마애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에서 마당바위로 가려면 큰 두 개의 바위 사이에 난 조그마한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일명 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하는데, 체격이 큰 사람은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구멍이다. 사람이 바짝 엎드려 기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바로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이 마당바위는 방어산 미륵불(彌勒佛) 바로 위에 있다. 미륵불은 사람이 일부터 깎아 만든 게 아니라 바위의 형상이 부처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어산은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찾지는 않지만, 가벼운 등산을 즐기기에는 제격이다. 산 정상에 서면 함안읍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맑은 날이면 지리산도 보인다고 한다. 진주와 함안 등 구석구석에 보금자리처럼 들어선 농촌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 방어산은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지수면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530m의 산이다. 서울의 산꾼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방어산은 높지 않지만 보물 제159호인 '방어산 마애불'과 마애사, 관음사 등의 사찰탐방을 겸할 수 있고, 울창한 소나무숲과 굽이도는 남강을 시원스레 바라볼 수 있다.

 

방어산을 가장 쉽게 오르는 길은 군북면 하림리의 마애사를 출발해 마애삼존불을 둘러본 후 방어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하산은 남해고속도로변에 자리한 남강휴게소로 내려오면 된다. 그 반대로 오르는 산행도 마찬가지다. 방어산 산행들머리는 함안군 군북면을 지나는 남해고속도로의 남강휴게소. 휴게소의 후문을 나서서 서쪽으로 200m 지점에 가덕마을 빗돌과 방어산 등산안내도가 자리한다. 마을 경로당 뒤의 오른쪽 길을 따르면 밭을 지나 멀리 물탱크 오른쪽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1시간20분이면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방어산 유래를 적은 안내판과 등산안내지도가 있다. 남쪽으로 능선길을 이어 20분을 가면 헬기장과 옛 헬기장을 지나 능선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는 '가덕휴게소 5.4km, 어석고개 7km' 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쪽 능선길로 10분 내려가면 보물 제159호 방어산 마애불이 있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절길을 따르면 마애사에 도달한다.

 

삼거리로 되돌아올라(15분 걸림) 남쪽 능선길을 이어가면 방어산 고개를 지나 1시간이면 괘방산 최고봉인 506m봉에 이르고, 다시 30분이면 삼각점이 있는 지도상의 괘방산(457m)에 이른다. 이곳에서 20분 남짓이면 어식재에 닿는다. 포장길을 따라 진주쪽(서쪽)으로 10분 내려가면 부평휴게소. 남강휴게소에서 출발해 방어산, 괘방산, 부평휴게소를 잇는 종주코스는 약 5시간 걸리고, 남강휴게소에서 방어산을 올랐다가 마애사로 내려서는 길은 2시간30분 걸린다. 등산코스는 군북면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산등을 타고 오르면 되는데, 등산로 입구에 새로 건립된   마애사라는 사찰이 나오며, 오솔길을 따라 500m정도 가면 보물 제159호인 마애불(磨崖佛, 암벽에 음각된 석불 입상)이 있다. 마애불을 뒤로하고 지곡쪽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방어산 정상이고, 이곳에서 바로 내리서면 군북면 박곡리 남강휴게소(남해고속도로)가 나온다   
하림 ~ 마당바위 ~ 방어산고개 ~ 방어산 정상 ( 약 2시간 )

 

마애약사여래삼존불(보물 제159호)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산131번지 내 위치한 방어산마애불 삼존상(三尊像)은 암면을 깍아 새긴 마애약사불상과 그 협시보살상인데, 신라 애장왕 2년(801)에 만들어진 신라 하대의 가장 저명한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8세기의 이상적 사실주의 경향의 불상들과는 다소 다른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구의 불상이지만 위장부적인 당당한 체구가 아닌 현실적인 장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특징은 정적이며 침울하기까지 한 얼굴, 탄력감이 줄어진 신체 각부, 그저 둥글기만 한 어깨, 밋밋한 가슴과 배 등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광보살의 강렬한 인상과 월광보살의 온화하고 우아한 얼굴 등에서 이상적인 양식이 다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한층 해이되고 한층 활력이 줄어진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이행되어 가던 변모과정을 잘 보여주는 801년의 절대연대를 가진 중요한 마애불상으로서 1962년 1월 21일 보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