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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각산(북한산) 세번째 높은 봉우리 만경대 사진 모음

疾 風 勁 草 2019. 1. 7. 19:43

 

3. 만경봉(萬景峯) (3)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백운봉 남쪽에 있다. 높고 빼어나고 기이하고 웅장함이 인수봉과 자웅을 겨룰 만하다.

■ 申耆의 書啓

    만경봉과 백운봉 사이에 또 암문이 있습니다. 

■ 신경준의 삼각산기(三角山記)

     삼각산은 다 석봉이다. 그 상봉을 백운대라 하며, 그 옆에 국망봉과 인수봉이 있다. 세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하늘로 치솟아 있으므로 삼각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

    백운봉과 만경봉 일명 국망봉과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이름하였다.


나. 해석

■ 백운대 옆의 있는 암문은 백운봉암문으로 현재의 위문을 가리키며, 바로 옆에 만경대가 있다. 따라서 위문을

   중심으로 백운대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는 만경대를 의미하며, 과거 만경봉 또는 국망봉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만경대로 불린다.

■ 만경(萬景)의 이름에 담고 있는 뜻과 같이 만경봉이란 전망이 좋은 봉우리로 국망봉이란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제시대 온조, 고려 말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올랐다는 봉우리가 만경봉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만경대에서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위험한 암릉 구간으로 상당히 위험하여 안전장비가 필요하나, 위문

   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따라서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만경대가 백운대보다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쉬운 길이다

 

 

<▼산성주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삼각산'> 

<▲산성주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삼각산(남쪽)'> 

<▲산성주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삼각산'(남쪽)> 

 

 

<▼삼각산(북한산) 도봉산 신선대에서 바라본 도봉주능선, 우이암능선의 '우이암과 삼각산'>    

<▲삼각산(북한산) 도봉산 신선대에서 바라본 도봉주능선, 우이암능선의 '우이암과 삼각산 세번째 봉우리 만경대'(북쪽)>   

<▲삼각산(북한산) 도봉산 오봉에서 바라본 '상장능선과 삼각산 세번째 봉우리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올라가면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발코니'>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와 노적봉'>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 '오리바위(백조바위)와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 오르는 등산로 중간기착지 '오리바위(백조바위)와 만경대 오른쪽 노적봉'>

  <▲삼각산(북한산) 백운대 오르면서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만경대로 치솟는 관문 '스타바위'>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만경대로 치솟는 관문 '스타바위'/백운동암문(위문) 위>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만경대로 치솟는 관문 '스타바위'/백운동암문(위문) 위> 

  <▲삼각산(북한산) 백운대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만경대로 치솟는 관문 '스타바위'/백운동암문(위문) 위>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에서 출발한 산맥이 백운대를 밀어올리고 백운대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만경대로 치솟는 관문 '스타바위'>

 

 

<▲삼각산(북한산) 노적봉 동봉에서 바라본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노적봉 동봉에서 바라본 '만경대(서쪽)'> 

<▲삼각산(북한산) 노적봉 동봉에서 바라본 '만경대(서쪽)'> 

 <▲삼각산(북한산) 노적봉 동봉에서 바라본 '만경대(서쪽)'>  

<▲삼각산(북한산) 노적봉 동봉에서 바라본 '만경대(서쪽)'> 

 

 

<삼각산(북한산) 노적봉 동봉에서 바라본 '만경대(동쪽)'> 

<▲삼각산(북한산) 엄지바위능선 도선사 방향으로 갈라져 나온 도선사능선에서 바라본 '삼각산'/왼쪽 용암봉, 만경대, 오른쪽 인수봉, 소원바위(동쪽)>

<▲삼각산(북한산) 엄지바위능선 도선사 방향으로 갈라져 나온 도선사능선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만경대'/왼쪽 끝은 용암봉>

 <▲엄지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삼각산 설경'/좌장(만경대) 우장(인수봉)을 거느린 중앙 백운대 대장>

 <▲도선사 방향으로 갈라져 나온 지선 엄지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삼각산 셋째 만경대' 전경/겨울에 보니 선이 뚜렷해서 더욱 아름답네요>

<▲삼각산(북한산)엄지바위능선 상부에서 바라본 '만경대'/왼쪽 용암봉> 

<▲삼각산(북한산)엄지바위능선에서 바라본 '만경대' 전경>

 <▲삼각산(북한산)엄지바위능선에서 바라본 '만경대' 꼭대기 부분>

 

 

<삼각산(북한산) 비봉 방향에서 바라본 '만경대(남쪽)'> 

  <▲삼각산(북한산) 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앞에 사모바위 뒤 왼쪽 백운대, 만경대, 의상능선의 나월봉, 나한봉, 상원봉, 문수봉>

   <▲삼각산(북한산) 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왼쪽부터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의상능선의 나월봉과 앞 응봉능선의 정점 '사모바위'> 

   <▲삼각산(북한산) 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왼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인수봉은 머리만 내림고 있고 만경대, 앞 노적봉> 

   <▲삼각산(북한산) 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 바위군단'/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용암봉, 노적봉 앞은 응봉능선 상부> 

   <▲삼각산(북한산) 문수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왼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용암봉 앞 노적봉> 

 

   <▲삼각산(북한산) 산성주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각산 총사령부'/오른쪽 끝 '신랑신부바위' 가 보초를 서고 있다> 

   <▲삼각산(북한산) 산성주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각산 총사령부'/오른쪽 세번재 '만경대'>  

 

 <▲삼각산(북한산) 영봉에서 바라본 '만경대'>2011-10-23

 

 

<삼각산(북한산) 첫번째 높은 봉우리 백운대 사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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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북한산) 두번째 높은 봉우리 인수봉 사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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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북한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소원바위능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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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의 암벽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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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북한산) 백운대 등산 겨울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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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三角山
)

1395년 12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 지은 경복궁에 들게 되니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새 도읍의 만년태평을 기원하는 가사를 지었다.
그 내용을 담은 '악장가사'에 북한산을 일러 '삼각산'(三角山'이라 쓰고 있다.

또 고려조 성종 12년(993년) 서희가 성종에게 아뢰기를
"삼각산 이북도 또한 고구려 땅입니다"하였고,
그뒤 고려사에 20여회나 삼각산이 등장하면서 각종 문헌과 비석 등에도 삼각산으로 굳어져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
삼각산'이 북한산의 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 떠나려.'라며 '삼각산'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주객이 전도되어 '북한산'이 산의 본명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북한산'은 산이름이라기보다는
백제 건국 이후 한강 이북지역을 뜻하는 이름, 또는 고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대며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을 당시에는
개차산, 열야산, 진악산, 삼년산, 마시산 등 '산'이 붙은 이른바 고을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산'은 고구려계 땅이름이 달(達), 홀(忽), 골(骨) 등과 함께 고(高) 또는 성읍(城邑)을 뜻하는 땅이름의 접미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문헌을 눈여겨보면 산을 이야기할 때는 '삼각산'이라 하였고
한성부의 옛 고을 명칭을 이야기할 때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각산 이름에 대하여 풀이하기를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솟아있으므로 삼각산이라 부른다 "고 풀이하고 있으나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북한산이 어찌 이 세 봉우리뿐이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과 맞먹는 노적봉, 보현봉, 문수봉 등 여러 봉우리들을 제외하고서
어찌 세 봉우리만 가지고서 논할 것인가.
이것은 뒷날 사람이 '삼각'(三角)이란 한자풀이에 너무 얽매어 부회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서 '삼각산'이란 이름은 '서울산'을 한자로 나타낸 것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의 본딧말이 '셔불'(세불)이다.
그러니까 '삼각'(三角)의 '삼'(三) 은'세'(서)이고, '각'(角)은 '불'(뿔)로 곧 '서불→서울'이 된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의 삼각산,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의 삼각산 등 여러 곳의 산이 삼각형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말의 '셔불', '세부리'를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 뿐이다.
그것은 옛날 그 지역이 부족국가의 군장(君長)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셔불, 세부리)은 그 지역의 '수부'(으뜸도시)라는 뜻이다.
특히 신라의 17관등급 가운데 첫번째 품계인 '각간'(角干)을 '셔블한'(敍弗邯)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서 '각=셔블'과 '간=한'의 대등관계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삼각산'에서 '삼=셔(서)'와 '각=셔(서)불'에서 '셔'(서)가 다만 중복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산=삼각산'에서 뭇사람 사이에 사용해온 산이름은
백제의 도읍 이후 삼각산이었으며
그것은 이 산이 사람들 사이에 '서울산'의 뜻으로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서울산'이 있음은 온당한 일이다.

 

 



삼각산(三角山)

삼각산은 인수봉(仁壽峰), 백운봉(白雲峰), 만경봉(萬景峰)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서서 깎아 세운 듯한 삼각(三角)과 같다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인데,
고려시대 이래 불리어온 북한산의 산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고려사』 서희전(徐熙傳)에 의하면, 서희가 성종에게 아뢴 말 중에 "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삼국시대이래 북악이라고 불리어 오던 산명이 고려시대부터 삼각산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듯 하다.

조선시대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북한지』, 『대동지지』등의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모
두 한결같이 북한산의 본명을 삼각산으로 기록하였고,
또 다른 이름으로 화산(華山)이나 화악(華岳)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북한산'이란 산명만 강조되고
'삼각산'이란 이름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있다.
'북한산'이 고려시대부터 천여 년 간 사용해온 '삼각산'이란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된 것은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삼각산의 유적을 조사하고 그 보고서의 명칭을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라고 하였으며,
"북한산은 삼각산으로도 일컫고 달리 화산이란 이름도 있다."고 소개하였다.
이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늘상 사용되었다.

북한산(北漢山)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삼각산(三角山)은 양주 경계에 있는데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의 분수령에서 잇달은 봉우리와 첩첩한 산봉이 굴곡을 이루면서
구불구불 돌아 양주 서남쪽에서 와서 도봉산이 되고 또 삼각산이 되니 실로 경성의 진산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땅을 찾은 곳이 바로 이 산이다” 라고 하였다.

「북한지(北漢誌)」에서는
“삼각산은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서서 깍아 세운듯한 삼각과 같다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은것인데 일명 화산, 또는 화악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인수봉에 대한 설명으로 “인수봉은 삼각산의 제1봉이다.
사면이 순 바위로서 깍아 질러 섰는데
봉우리 등에 한 바위가 덧붙어서 부아악이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북한산(삼각산)의 위치와 지형, 옛 이름외에도 관련된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북한지」에서는 삼각산이란 이름이 붙게 된 연유와
인수봉에 대한 위상과 별칭까지 설명해 놓았음을 볼수가 있다.

원래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백제 이래의 한강을 뜻하는 행정지명에서 기원하였고
산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백제의 시조 온조가 처음 한강 이북 하북위례성에 도읍하여 정착하였다가
온조 14년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의 한산 지역을 북한산,
한강 이남의 한산 지역을 남한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북한산은 정점이 되는 삼각산 외에도 28개의 큰 봉우리들을 둥그렇게 거느리고 있다.
인수봉에서 출발한 북한산은 백운봉으로 이어져 남쪽으로 만경봉, 노적봉, 용암봉, 일출봉, 월출봉, 기룡봉, 반룡봉, 시단봉, 덕장봉, 복덕봉, 석가봉, 성덕봉, 화룡봉, 잠용봉, 보현봉, 문수봉이 연이어 솟아 있다. 다시 문수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는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미륵봉(의상봉)의 줄기가 대서문을 향하고 있다.
또한 보현봉에서 남동쪽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산으로 내달은 주맥이 보이는데,
이 줄기는 예부터 도성(都城)과 연결된 용의 맥이라 하여 신성시 하여 왔다.

능선이 대서문을 지나면 성내 계곡의 물을 흘려 보내는 중흥수구(重興水口)에 닿는다.
이곳을 지나면 둥그렇게 능선이 휘어 원효봉, 영취봉(염초봉), 시자봉을 거쳐
다시 백운봉과 만나게 된다.

 

 

 

출처 : 하루 시 한 편 읽기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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