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산행일지 ★★

<2>남문-영춘정-수어장대-서문(우익문)-암문-연주봉옹성-암문-북문(전승문)-암문-동장대터-남한산성여장-제2암문(장경사신지옹성)-장경사-송암정-동문

疾 風 勁 草 2014. 7. 23. 12:04

 

 

 

 

 

 

<쉼터>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청량당>

 

* 청량당(淸凉堂)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청량당은 이회(李晦)와 그의 부인 그리고 백암대사를 모신 사당이다.

이회는 조선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의 공사를 맡았던 책임자였다.

그는 성실하나 또한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듯, 착실하고 튼튼하게 성을 쌓아 갔으나, 그러다 보니 그만 기한을 맞추는걸 등한시 했던 모양이다.

결국 기한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게 되자 공사비를 탕진하고 공사에도 힘쓰지 않아 기일내에 끝내지 못했다는 누명을 쓰고, 그는 사형을 당하였다.

비극은 이회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부인 역시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여 오던중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에 빠져 자살하였다는 것이다.

이회는 죽으면서 자신의 좌가 없다면 매 한마리가 날아올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데, 과연 그가 현장의 이술로 사라지는 순간 어디선가 매 한마리가 날아와서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당시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른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가 이룬 공사를 재조사해서 보니 그가 맡았던 부분이 견고하고 충실하게 축조되어 있어 무죄가 밝혀졌고, 사람들은 수어장대 옆에 사당(祠堂)을 지어 이회와 그 부인의 억울한 넋을 달래 주었다.

 

 

<수어장대 앞에서...>

 

 

 

 

 

 

 

 

 

 

 

 

 

 

<무망루 앞에서...>

 

* 무망루(無忘樓) *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수어장대>

 

수어장대는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

 

 

 

 

<산성길을 내려서면서...>

 

 

 

 

 

 

 

 

 

 

<서문 옆쪽에서...>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