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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봉 - 2015. 08. 23

疾 風 勁 草 2019. 8. 10. 15:56

 

강씨봉은 아마 내게 가평 쪽의 산들을 열어 준 교두보였을 것이다. 한참 갈피없이 산행을 하며 그것은, 내가 쓸 이 하루의 시간으로 백두대간의 여러 산들을 하나씩 찾으리라는 희망으로 체력을 키운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백두대간의 산들을 하나씩 찾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쩌면 그 때부터 목표를 잃은 채 더 헤매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다 한북정맥을 알게 되었고 이 강씨봉을 만나고 , 한북정맥이 백두대간의 백산 분기점에서 분기했다는 그 조그만 한 끄나풀을 빙자해 한북정맥의 산과 그 주변의 산들을 탐닉 하게 된 시발이 된 것이다.

나는 이 강씨봉을 한 겨울에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가능한 험하고 거친 산들을 선호하다가 갑자기 만난 순하디 순한 산길에 나도 모르게 많은 감상에 젖게 된 산이기도 하다. 그 이전까지 나는 오직 산과 싸우기라도 하듯, 몸을 학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거친 산을 찾아 그 산보다 내가 더 거칠게 굴던 때였다. 더 힘든 것이 더 보람 있고 더 가치 있는 것 이기라도 한 것처럼 굴던 그 시절은 그러나 과히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산에서 배우고 산과 호흡한다는 것은 내가 너무나 어리석어서 그로부터도 한참이나 지난 뒤임을 고백한다.

추가령으로부터 임진강의 강구인 파주 교하의 장명산까지 이어지는 한북정맥이라는 그럴듯한 산줄기를 알고 그러나, 이 산줄기 또한 너무 먼 곳은 내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느껴, 그 중간 어느 한 곳부터 발길과 시간이 닿는 곳마다 가보자고 생각하고 정한 첫 산이 강씨봉이었다. 그 첫 날의 만남에서 나는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산행을 한 것이고, 마음 속으로는 울음을 터트렸던 산이다. 결코 울지 않았으나 되돌아 생각해보면 마음은 분명 그리 서럽게 울었다. 천천히 걷는 걸음과 주변의 살풍경한 모습과 그 허한 산에 놓여있는 몇 가지 특징 있는 나무들과 마른 억새와 그런 것들이 어쩌면 핏발가득 했던 눈동자를 씻어 주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물푸레나무가 염증을 없애고 눈을 맑게 해주는 효험이 있기 때문일 것인지, 정끝별 시인이 자작나무 내 인생에서 말하듯 명치끝에 든 멍울을 터트려 희게 배어나오게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 때까지만 해도 갈대라 우기던 억새의 장관 속에 고개 숙임을 배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튼 나는 쉬운 걸음과 계곡 가득 메운 얼음과 눈과 바위가 만드는 흑백의 알록달록한 무늬에 매료되었고 그러다가 계곡을 벗어나서는 자작나무들을 만나고 물푸레나무들을 만나고 억새밭을 지나 어쩌다, 오르막길의 능선에서 뒤를 돌아보았던 것이고, 그 과거처럼 펼쳐진 풍경의 아름다움에 화들짝 놀라 이런 것인가? 지나 온 지난 일이란 정녕 이런 것인가?’ 곱씹어 의문하며 나 스스로에 대해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겨울이었다. 봄처럼 만물이 소생하거나 가을처럼 화려한 물들음도 없는 삭막하기 그지없이 그저 마른 나무와 침엽과 풀 위에 언 눈이 하얗게 덮인 단지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데 아름다웠다. 아직 마른 나무와 풀과 침엽과 흰 눈과 먼데 박무에 가려져 투명한 속에 숨은 회색의 산과 또 산과, 흐리게 구름 낀 하늘과 모든 것들은 조화되어 그저 각각으로 보면 모두 메마르고 볼품없는 것들이 그렇게 서로 어울리게 놓여 만들어 낸 조화로움이 거의 내 넋을 빼 놓는 듯 했다.

그 이전 전투적 산행에서 결코 잘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명, 나는 그런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산이고, 그 이전 한북정맥이라는 산줄기 중 하나임이 아니었다면 자는커녕 을 찾았을 리 없는 일이었지만 아마, 인연이리라. 나는 그 때 산처럼 여기지도 않았을 이 강씨봉을 사실은 마음에 담아 돌아왔던 것이다.

 

한 번인가 나 혼자 또 갔었고, 한 번인가 아내와 함께 갔다가 도성고개에서 방향을 틀어 민둥산을 다녀왔다. 그 때 아내에게는 강씨봉을 목표로 삼아 이야기 한 까닭에 아내는 그저 강씨봉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출근 때문에 이번 산행에 함께 가지는 못하고, 집을 나서는 내게 어느 산을 가느냐 묻는 아내에게 강씨봉이나 운악산을 가려 한다 했더니 강씨봉 좋지말한다. 그 말하는 품새가 마치 산에 이골이 난 사람 같은 것이어서 나는 속으로 웃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맙기도 하고.

아내는 이제 분명히 달라졌다. 처음 시작할 때 아내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힘에 겨운 걸 견디며 억지로 따라다녔던 것이었다. 늘 힘들어 했고 그러나 늘 견디어 내었고 지난겨울 자신에게는 혹독했던 도봉산행 이후 부쩍 산에 자신을 느끼고 이제는 산행을 하지 못하는 휴일을 아쉬워한다. 이제 아내는 아내 스스로 산을 좋아한다. 내게는 짐이 되는 줄도 모르고 나를 보호하려들던 초창기를 벗어나 이제 산은 제각각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 된 것이다. ‘다음 주에는 쉬니까 꼭 같이 가아내는 몇 번이나 다짐을 둔다. 예전엔 어림없는 일이었다. 내가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고 몰라주면 삐져서 투덜대고 하던 아내는 이제 적어도 어떤 일에 관해서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함께 가자건, 일이 있어 못 간다건... 말을 하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도무지 헤아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아마도 가장 고마운 일인 듯하다.

 

꽤 일찍 출발했고 출발할 때는 썬그라스가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날도 맑았지만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마치 터널이 가까워지는 동안의 천마산 봉우리는 대단했다. 시계가 불과 30미터도 되지 않는 짙은 운해가 끼어 있었고 천마산의 능선 위로 막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 구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빛살을 뿌리고 있었다. 찬란한 광경이었다. 사진을 제대로 찍기에는 이미 타이밍이 늦었고 그렇게 순간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뒤늦게 휴대폰 카메라로 한 두 장 셔터를 눌렀지만 이미 실기한 후여서 제대로 된 그 순간의 장면이 잡히지는 못했다. 그런 순간마다 늘 생각한다. 한 순간이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삶에 있어서도 매순간에 충실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어떤 하나의 순간을 절정으로 얻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풍경을 얻기 위해 늘 카메라는 준비되어 있어야하고 찍을 태세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타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아마도 순전히 운 일 테지만, 적어도 누구에게나 어떤 하나의 과정 중 한 두 번은 분명 나타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을 위한 대기 없이, 참을성 있는 기다림 없이 갑자기 그 순간을 낚아낼 수는 없다. 순간은 어쨌건 순간에 불과해서 그냥... 기다려주지 않고 냉정하게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 때 얻은 한 순간은 그 순간을 위해 기다려 온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의 총화며 보람이다. 소모되는 것처럼 여겨지던 모든 순간들이 드디어 하나의 결실로 맺게 되는 것. 삶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떤 결과만 조급히 기다리며 준비에는 소홀한 사람일수록 세상이 어떻고 제도가 어떻고 사람들이 어떻네... 불만이나 삼는다. 준비하고 결실이 맺어지기까지의 인고는 견디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그 결과의 차이를 불평등으로 느끼는 참 어리석은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쉽고 편한 것만 찾으며 험한 역경과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가식의 양피를 뒤집어쓰고는 세상이 속아주지 않는다고 뒤돌아서 불평하는 그런 삶이다. 그럴수록 인정하는 것에 야박해지고 정당한 방식보다는 술수와 모략에 빠져드는 것이고, 앞서지 못 할 바에야 뒤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잡아채는 반칙으로 뒤에 서지 않으려 한다. 사실은 그러면서 눈 질끈 감고 어떤 이유와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그러나 스스로 자신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얼마나 가엽고 불쌍한 삶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무지와 뻔뻔스런 무책임으로 점점 더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가는 삶이다. 결실 없는 일이란 준비에 소홀했던 결과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 결코 행복의 열쇄를 쥘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준비하지 못한 것 때문에 갑자기 나타났다 자동차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 버린 한 순간에 대한 아쉬움은 그런 긴 생각을 머리에 여운으로 남긴다. 마음은 그곳에서라도 길을 바꿔 다시 천마산을 가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산 아래서 올려다보는 정황상 산 위에서면 바로 운해를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천마산, 축령산에서 운해를 만났고 결국 수동계곡의 주변 산들에서 운해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온이 선선해지고 습도가 높으면서 낮과 새벽의 온도차가 10도 이상 나는 날, 그런 날 수동계곡 주변의 산을 찾으면 아마도 운해의 감동을 만날 확률이 무척 높다. 그중에도 가장 좋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장소는 아마 축령산 장군바위쯤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은 순전히 내 주관적 경험이 아닐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나는 앞으로 내달렸고 운악산일지 강씨봉일지 갈피 잡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운악산으로 접어드는 길목을 지나치도록 선택에 대한 갈등을 한 끝이어서 결정은 거의 강제로 된 꼴이었다. 이제 되돌아가든 계속 간다면 강씨봉 하나.

그리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강씨봉 휴양림에 도착한 것은 거진 9가 되어서였다. 그곳에서도 시간을 좀 끌었고 오는 중 들른 명지산 입구의 주차장은 아들과 함께한 추억으로 또 잠시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 탓이다. 그래도 열시 반이 되기 전, 아주 넉넉하게 강씨봉 정상에 서 있을 것으로 예상 했었다. 강씨봉 휴양림은 전에 왔을 때보다도 훨씬 단정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지금도 계속 다듬어 가는 중이었다. 계곡의 물을 따라가는 원래의 산행로는 낙석이 위험하다는 표지로 막아 놓고서는 계곡 건너편에 산을 가로지르는 테크를 만들어 훨씬 편한 걸음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하지만, 나는 위험하다며 막아 놓은 옛길로 향한다. 위험하기만 하다면 애초에 그 길로 다니지 못했을 것이고 더구나 늘 겨울에만 다니던 길이었다. 흙과 자갈이 놓여있고 마치 음악이거나 다정한 목소리 같은 개울물이 벗하는 길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굽이마다 반가운 모습들이 여름의 옷을 입고, 전혀 다른 것 같은 풍경으로 내 앞에 나타났고, 그건 한 편 깊고 건강한 모습으로 보기 좋은 면도 있지만 한 겨울의 그 스산하고 쓸쓸한 모습에서 느끼는 것처럼 깊고 강렬한 인상은 아니었다. 다만 알록달록한 눈과 바위가 만들어내는 무늬 대신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을 갈아타는 물 색이 그렇게 맑을 수 없었고 그건 겨울을 넘겨 봄을 맞는 물 색과는 또 다른 느낌의 맑음이었다. 어쩌면, 물 색깔하나도 이리 계절의 변화와 맞추어 가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주 도봉산에서 천축사를 가는 중 본 마른 계곡과는 전혀 딴판인 수량이 풍부한 맑은 물줄기가 첫 번째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아니, 가을은 이미 코앞에 서 있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산길을 오르는 내내 그렇게 가을의 증거들은 속속 눈에 띠는 것이다. 노란들국화의 탈색한 꽃 빛에서, 한참 성하던 검푸른 나뭇잎들이 이제 숨 죽여가고 가을꽃들과 짧은 가을 잎들이 새로 피어나고.... 자연 걸음은 늦어지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소란스런 한 떼의 사람들이, 내 늦은 걸음을 뒤 쫓아 오고, 나는 그들을 보내 고 뒤서서 편하게 가려하는 데 또 한 떼의 소란함이 그리고 또....

아마 최근의 산행에서 가장 시끄러운 산길이 아닌가 싶을 만큼 사람들은 마음껏 떠들며 제각자의 이야기들을 하며 지난다. 조용히, 정말 조용히 이 숲과 자작나무와 물푸레나무 그리고 이제 막 술이 달린 억새와 만나고 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던 나는 그들을 한참씩 기다리며 뒤서기를 몇 번이나 하는 동안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 것이어서 강씨봉에 도착한 것을 11시도 넘긴 시간이었다. 작정하고 오르자면 한 시간 조금 넘기면 충분한 길을 거의 두 배나 들여서 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리워하던 모든 풍경들과 은밀하고 조용한 밀회조차 허용되지 않은 것은... 그래, 아직 산을 찾기에 좋은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능선의 오르막에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초록으로 꽉 차있는 막힌 공간은 역시나 겨울 같은 느낌이 아니다. 물론 아름답지만, 그건 꽃과 잎과 풀들이 이룬 빛의 풍요로 넘치는 아름다움이었고 내게 풍요는 그다지 짙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지 모른다. 바짝 메마른, 그 을씨년스럼 속에서 만들어 내는 색조의 조화는 무어라 표현 못할, 엄청난 자극처럼 느껴지는 그런 인상의 풍경이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앞 세워 보내며 나는 후회하기도 했다. 말소리가 법석으로 내 걸음을 쫓아 올 때 차라리 더 빠르게 속도를 내 꽁무니를 빼야했었나? 하는 후회.

 

겨울엔 황량한 바람 속을 걸었던, 양 옆으로 트인 능선 위로 올라서자 비록 시계가 좋지 않아 산들이 흐리기는 하지만 멀리 축령산과 화악산이며 바로 곁의 명지산과 또 이런 저런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막상 강씨봉 정상에 올라서는 그리 오래 있지 못했다. 마지막엔 내가 시간을 지체하며 기다려 주면 몇 발짝 안 가 함께 머물며 떠들어 대는 대여섯 명 한 팀이 시끄러워 그들이 쉬는 자리를 지나쳐 쌩하니 먼저 지나갔는데 결국 그들의 소리가 또 뒤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리가 들리자 나는 원래 강씨봉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을 지우고 거의 사람을 만날 확률이 없는 정면의 지름길로 하산로를 잡아 내려왔다. 한참이나 내려와 아내가 굳이 싸 챙겨 준 김밥과 커피를 마시도록 정상 쪽 그네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급경사로라고 안내문구까지 써 놓은 지름길은 그러나 어지간한 산길과 다름없다. 굳이 따지자면 예봉산 정도나 될까 싶은 약간의 된비알이고 그러나 육산이어서 순하다. 시간을 줄이고자하는 하산길로는 그만일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아직 놀 일이 남은 여름의 끝자락이었을지 모를 이 날, 나는 코앞에 불쑥 다가 온 가을을 만난 것이었고, 돌아오는 길은 거진 4시간이 넘는 체증에 시달렸다. 산에서 밥을 먹었음에도 교통체증이 거진 끝나가는 금남인터체인지 부근 국시가를 일부러 찾았다. 워낙 맛있는 집이라고 소문이 난 까닭에 언제부터인가 한 번 맛보려던 집인데 막히는 길 동안 문득 이 집 생각이 났었던 것이다. 편한 분위기는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지만 소문만큼 훌륭한 맛은 결코 아닌 듯.... 냉면 맛을 볼 때는 물냉면을 식초나 겨자를 넣지 않고 먹듯 국수는 역시 잔치국수로 맛을 봐야 하는 데, 첫 맛이 무척 짭쪼롬 한 것이 아마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먹는 동안 간이 입에 배어 나중에 가서짠 맛에는 무디어 졌지만 첫 맛은 분명히 새우젓 간 같은 느낌의 짠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오히려 김치가 국수보다 조금 낳아 그나마 김치맛으로 국수를 먹는다 할까? 뭐 그런 맛.

 

이제 검봉산 하나가 남았다. 봐서 다음 주엔 아내와 검봉산을 갈까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될 것이고, 나는 또 한 번의 저물어감을 마음에 담고 그 안에서 배울 것이다. 저물어 가는 삶에 있어서의 태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