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산행일지 ★★

<9>낙성대-공학관-자운암-연주대-염불암-안양예술공원-관악역

疾 風 勁 草 2010. 11. 8. 08:24

 

<염불암 대웅전>

 







<염불암 대웅전>

 

* 염불암(念佛庵)<안양시 만한구 석수동>염불암이 위치한 삼성산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그 하나는 원효, 의상, 윤필 등 신라의 세 성인(聖人)이 이 산에 들어와 원효대사는 삼막사를, 의상대사는 연주암을, 윤필거사는 염불암을 각각 짓고 수도하였다는 데서 기인하고, 또 하나는 삼막사에 지공, 나웅, 무학이 머물렀던 까닭에 삼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기록에 의하면, 염불암은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유래도 있으며 이때 이름은 안흥사로 곧 염불암의 시초로 전해진다.조선 태종 7년(1407년)에 한양의 백호에 해당하는 관악산의 산천기맥을 누르기 위해 왕명으로 사찰을 대중창했고, 이후 계속 중수하여 조선 후기 철종 때에 이르러 도인(道印)스님의 칠성각 건립과 1992년 청봉(靑峰)스님에 의해 요사체(寮舍體)와 대웅전이 완공되어 그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높이 8m 의 미륵불은 1947년 성공(性空), 기석(奇石), 화상(和尙)이 주지로 부임하여 낡고 퇴락한 전각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불사(佛事)를 준비하던 중,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마애불상을 새겨 널리 중생을 구제하라는 현몽을 받들어 1964년부터 5년의 불사끝에 완공된 것으로 전해온다.사찰 선방 주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중 마애부도 2점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부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경내에 서 있는 수령 500년의 보리수(도지정 보호수 5-2)는 염불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범종각.  종에는 (앗! 좋은 날)이 새겨져 있음>

 

<염불암 전경>

 

<미륵불>

 







<염불암을 돌아서 나오다 보면 지금보는 나무를 볼 수가 있다.  나무의 몸통이 드러누워 있는 상태>

<염불암을 지나면서...>




<염불암으로 들어가는 입구>

 


<안양예술유원지 주차장 건너편의 장터 순대국>

 

<장터 순대국>

 

예전에 한번 찾아던 곳인데, 참으로 괜찮아서 다시 찾게 되었다.순대국과 고기머리를 시켜놓고 소주 한잔씩을 곁들이며 산행후 뒤풀이를 가지다.장거리 산행이건만 아무런 사고없이 안전하게 하산하여 기쁘다.소주맛도 오리지널이라서 그런지 더욱 좋고...

 

겨울을 보내는 관악산과 삼성산 산행.지금도 남아있는 눈이 녹지 않아 겨울산 다운 맛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산행길이었다.몇몇이 모여 시작한 서울대공학관을 시작으로 자운암을 출발하여 국기봉 그리고 관악산 주봉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이지만, 등산로의 상태는 아주 빙판길이라 쉽지가 않았다.그러나 오늘의 산행은 너무 신선해 보였다.온통 바위와 돌들로 이루어진 바위길 암봉 산행 구간이지만, 전후좌우로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힘든줄 모르고 올라서게 되었다.구정 전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등산객들이 별로 없었다.그러나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이곳을 찾고 있었다.관악산 주봉에 올라 기록을 남기고, 다시 연주대로 향하여 연주대를 둘러본 후, 돌아서서 능선을 따라 팔봉을 향하여 나아갔다.시원스레 펼쳐지는 능선의 훤함과 더불어 산과 봉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눈을 바라보면서 산행을 즐기다.시작부터 염불암까지의 산행은 아주 안전하게 산행에 임했고, 또한 내가 보고자 했던 것들도 마음껏 바라보면서 천천히 산행을 하다보니 어느듯 마침표에 이르렀다.함께 한 친구와 후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친구와 후배님들 그리고 우리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접고자 한다.

 

늘 행복하시고, 웃음이 넘치는 그런 날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또한 건강한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새해 福 많이 많이 받으시고, 늘 마음속에 미소와 행복이 살아 숨쉬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