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산행일지 ★★

<1>도봉산 탐방안내소-도봉서원-도봉대피소-산악구조대-석굴암-만월암-포대정상-Y자계곡-자운봉-삼거리-마당바위-성도원-구봉사-도봉서원-도봉산역

疾 風 勁 草 2014. 7. 14. 09:23

 

 

<석굴암으로 올라서는 가운데 우측으로 바라 본 기암을 바라보며...>

 

 

 

 

 

 

<석굴암으로 올라서는 길목의 삼거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돌계단길을 타고 올라서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그렇지만 현재의 장소에서 우측 방향의 <푸른샘> 이정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측 돌계단길을 타고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이 길을 택했다. 

나중에 석굴암을 둘러본 후,

<푸른샘> 이정표가 바라보이는 곳으로 돌아와서 <푸른샘> 이정표를 따라 만월암 방향으로 지나갈 작정이다.

광익이를 제외한 친구들은 뒤쳐져 올라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종훈/영준이와 함께 가파른 돌계단길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서고 있다.  

위쪽 석굴암 입구에 닥아섰더니 넓은 공터가 위치하고 있었고,

우측으로 70도 경사의 돌계단길이 석굴암으로 안내되고 있었다.

 

 

<푸른샘 갈림길 삼거리에서 좌측 석굴암 이정표를 향하여...>

 

 

 

 

 

 

<석굴암으로 올라서며...>

 

 

<석굴암에서...>

 

 

<석굴암>

 

* 도봉산 석굴암 *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석굴암은 6차례나 중창과 폐사(廢寺)의 과정을 겪기도 하였다.

암자 주변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청자를 비롯한 백자, 분청사기 파편들은 창건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제작된 것들도 발견되고 있어 석굴암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석굴암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병란(兵亂)을 거치는 동안 외적에 대한 방어와 인근 북한산성을 수호하는 병영사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석굴암 주변에는 가마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시에는 외적 방어에 필요한 건물이나 방어물에 필요한 기와나 그릇 등을 만들었다.

 

1935년에는 당시 석굴암의 화주(化主)였던 강응담 스님이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김병용 거사의 시주로

 '전각을 증축하였다.'고 한다.

김병용 거사는 석굴암 증축과 함께 관세음보살탱화 1본을 헌납하기도 하였다.

현재 석굴암은 법당인 만월보전, 오백나한전, 범종각, 요사 등의 전각이 자리잡고 있다.

 

 

<석굴암과 선인봉 암벽루트>

 

 

 

 

 

 

<석굴암에서 맞은편의 다락능선 암봉을 배경으로...>

 

 

 

 

 

 

<석굴암 우측의 만월보전으로 올라서는 계단길>

 

 

<석굴암 만월보전>

 

 

 

 

 

 

 

 

 

 

<석굴암과 선인봉 암벽루트를 배경으로...>

석굴암에 들어서서 뒤편의 선인봉 암봉을 바라보니 암벽루트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암벽에 붙어 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다.

급경사의 암릉경사를 타고 선인봉을 향하여 올라서는 그대들의 모습이 멋진 장관을 뿜어내고 있다.

석굴암에서 이곳저곳을 두루 살피는 동안 석굴암 입구까지 함께 한 동료 재관이와 영훈이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힘이 들더라도 석굴암 경내를 한번 둘러보고 내려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석굴암과 범종각>

 

 

<푸른샘 옆길의 동로를 타고...>

석굴암 경내를 둘러본 후, 올랐던 길을 돌아서 내려오다 보면 푸른샘 갈림길 삼거리에 닿는다.

그곳에서 좌측 오솔길을 타고 들어서다 보면 우측으로 공터에 푸른샘이 위치하고 있다. 

푸른샘 옆쪽의 등로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 고개를 올라서다 보면 등로가 희미하게 오르막 고개를 향하여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설 작정이다. 

물론 오늘의 이 코스 역시 내가 처음 접해보는 곳이지만,

반드시 만월암으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서기에 친구들을 이끌고 오르막 고개를 올라서고 있다.

 

 

<너덜지대의 경사를 올라서는 친구들>